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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이야기

보물 이야기(6) - 돈스코이호와 나히모프호 2015-02-06

1930년대 그 당시 일본은 황금 열풍이 휘몰아쳐 화장터를 뒤져서 이빨 금을 찾기도 하고 죽어가는 부모의 금이빨까지 뺀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미국에서 불어 닥친 금융공황이 전 세계는 물론 일본까지 불어 닥쳐 모든 물가가 폭락했는데 유독 금은 세계 각국의 은행에서 금을 매집했고 특히 일본 중앙은행은 바닥난 금을 채우고자 산금 정책을 추진하고 금을 사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터였다. 이 시절은 각국이 화폐를 발행하면 최소한 화폐발행량의 60~70%는 금을 확보해야 하는 금태환 제도를 시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일본은 러일 전쟁시 침몰한 경리함 나히모프호에 착안하게 된다. 이 배가 침몰한지 28년 후인 1933년부터 탐사 작업에 들어가 한바탕 보물찾기 소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리함 나히모프는 쓰시마(대마도) 앞바다에 침몰했고, 당시 그 배에는 영국 소브린(Sovereign) 금화가 적재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소문의 시작은 러일 해전시 나히모프호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수병들을 쓰시마 섬 주민들이 성심껏 돌봐주자 건강을 회복한 러시아 수병들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지라 립 서비스로 ‘국가적 기밀 사항’이라며 나히모프 함에 금괴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어 마치 전설처럼 1억원 금화(금괴 75톤 분량)까지 부풀려 진 것이다. 전회에 이야기한 돈스코이호는 순양함이고 침몰지점이 울릉도 저동항에서 1해리 반이나 떨어진 바다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관심 밖이었다. 

일본인들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수백 수천 명이 수많은 자금을 이 탐사에 탕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히모프가 침몰한지 75년만인 1980년에 이 배를 발견한다. 탐사가 시작된 지 48년만의 개가였다. 그것은 또한 그동안 발전한 해양 탐사 기술의 결과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일본의 인양업체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히모프호에서 발견한 백색금괴 16개를 공개하였다. 황금이 오랜 시간 바다 속에 있다보니 해초며 여러 바닷물속의 이물질로 하얗게 백화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인양업체는 이 침몰함에는 금괴 말고도 다른 보물이 엄청 실려 있어서 그 가치가 8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웃기게도 1억원이 그동안 80조원으로 뻥튀기된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 인양사업은 보물의 소유권 논란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은 소련과 일본 사이에 외교 분쟁까지 비화되었다. 심지어 소련은 KGB까지 동원하여 일본에 비공식적 압력을 넣었고 끝내 보물선 인양사업은 중지되고 만다. 그 후 이상한 루머가 돌기 시작 했는데 인양된 금괴가 너무 가볍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발견된 백색금괴가 진품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발전했고 결국 화학분석 결과 주철 덩어리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나히모프호에는 금화도 금괴도 백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 주철덩어리는 배가 요동치지 않게 배 밑바닥에 쌓아놓는 밸런스용 쇳덩어리였다. 한바탕 소란극은 허망하게 이것으로 막을 내렸는데... 

이처럼 황금에 대한 열망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꺼지지 않는 과욕과 허욕으로 일본인을 괴롭혔다고 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러일 해전에서 참혹하게 수장을 당한 러시아 수병들의 저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동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2000년 12월 우리나라의 여의도 주식시장에서 이 발틱 함대의 망령을 불러다 한바탕 난장판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 당시 동아건설이 퇴출판정을 받을 정도로 부도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2000년 12월 5일에 동아건설은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을 등에 업고 150조원 상당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 돈스코이함을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1905년 5월 29일 오전 6시 이배가 침몰한지 무려 95년 만이었다. 경리함 나히모프호에 금괴가 전혀 없었음은 이미 일본에서 확인되었고, 울릉도 사람들의 구전에 의해 러시아 수병들이 울릉도를 떠날 때 주전자, 은전, 동전 등을 주면서(대마도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돈스코이함에 엄청난 금괴가 있다고 했으니 보물선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발표로 12월 4일 동아건설 주식의 종가가 315원(액면가 5천 원)이었는데 보물선 발견 발표 다음날 5일부터 매일 15%씩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이 상한가는 15회 연속 이어져서 3주 만에 3천원을 돌파하게 된다. 주가가 3천원을 넘기고 항간에는 3만원까지도 얘기하는 어떤 증권회사가 있을 정도로 이 황금 보물선의 발견은 대단한 화제를 몰고 왔다. 그러나 눈치 빠른 기관들의 동아건설 주식매도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후 이배를 인양 했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6개월 후 돈스코히호의 금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 지고 동아건설은 주식시장에서 끝내 퇴출되고 말았다. 동아건설 주식이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 마지막 날 종가는 30원이었다. 

현재 그 발견되었다는 배가 확실히 돈스코이함이라는 증거조차도 아직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이 보물선 소동은 이와 유사한 수법으로 이용호 게이트가 터지고 또 숱한 사람들을 울리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 쓰기로 한다. 


*출처-귀금속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