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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이야기

고전으로의 회귀, 신고전주의 2015-02-06

자유분방하고 화려함이 극한으로 치닫던 로코코! 그러나 정점에 이르면 쇠퇴가 기다리는 법...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또 다른 움직임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으니 바로 고전주의로의 회귀였다. 
로코코의 자유분방함에 지친 이들은 다시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예술을 갈구했던 것이다. 
신고전주의적 요소는 일찍이 17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주얼리에서 유행했던 화환 모티브에서 꽃의 배치는 점차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해졌고 야성적인 풍성함보다는 정교함을 우선시했다.
나폴레옹은 이 신고전주의를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의 보석 산업은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 귀족층임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포정치 기간에는 그럴듯한 주얼리 한 점을 가지고 있어도 단두대로 끌려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왕관의 일부가 매물로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1804년 나폴레옹이 제정을 선포하면서 파리의 보석 산업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선왕들이 남긴 왕실보석을 신고전풍으로 다시 세팅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여기에는 그리스, 로마제국과의 연계성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황제 지위를 강조하고자 했던 치밀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는 주얼리 이외에도 실내 장식에서부터 가구, 의상에 이르기까지 신고전주의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는데 이것을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이라고 부른다.
신고전주의를 신봉했던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주얼리는 당연히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과의 연계성을 확실히 대변해주는 카메오였다. 
그는 1804년 대관식 왕관을 장식하는 데 카메오를 사용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보석 엔그레이빙 학교를 설립했다. 
나폴레옹 일가는 다이아몬드와 카메오를 함께 세팅하거나 에나멜을 입힌 금틀에 카메오를 세팅한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 


그림1        그림2그림3그림4



<그림 1>은 나폴레옹의 누이 폴린 보르게제 공주의 초상화로 머리에서부터 벨트까지 카메오를 한 벌로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나폴레옹은 <그림 2>처럼 자신의 모습을 카메오로 새겨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림 3>은 나폴레옹의 첫 번째 부인인 조세핀의 것으로 여겨지는 코넬리언으로 된 주얼리 한 벌인데 양각인 카메오에 비해 음각인 인타리오(intaglio)로 되어있다. 
<그림 4>에는 신고전주의 영향을 받은 주얼리들이 잘 나타나있다. 특히 왼쪽 하단에 있는 시계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가 그의 아버지 아폴론에게서 선물 받았다고 전해지는 하프(Lyra)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서구 문화의 원형인 그리스 로마 문화가 거듭 부활하면서 시대에 따라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