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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이야기

CHANEL (샤넬) 2015-02-27

" CHANEL (샤넬) "


샤넬이란 이름은 최고급 패션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1920년대 초 상류사회 패션에 혁명을 가져왔다. 
즉 자기중심적인 패션 한계에서 벗어나 혁신적이며 당차고 도발적으로 변모한 것이다. 종전의 엄격하고 제한적인 패션이 
자유분방하고 흥미롭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샤넬은 그 예로써 당시 길게 땋아올린 머리 유행도 짧고 활동적인 단발머리로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샤넬은 또한 보석 디자이너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샤넬은 애인들로부터 받은 정교한 보석들을 새로운 형태로 디자인하였고 양식진주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가브리엘 ‘코코’(애칭)샤넬은 자기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고 
보석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세계 대공황이 끝난 뒤, 사치 풍조가 시작할 무렵, 

1932년 11월 샤넬은 최초 보석전을 열었다. 

리의 파우부르 생 오노르가 29번지 샤넬의 집에서 열렸는데 샤넬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에는 가장 확실한 소재를 원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는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더구나 다이아몬드의 눈부신 광채는 검정색과 베이지색 흰색 계통의 샤넬의 의상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이 전시회때 가장 인기있던 목걸이 ‘혜성’은 ‘뉴오커’ 잡지에서도 칭송하였고 그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보석이었다. 

샤넬은 보석 디자인 재능은 사교활동을 정열적으로 펼쳐질 때 크게 발전하였다.

웨스터 민스터 공작과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과 같은 샤넬의 애인들은 샤넬에게 엄청나게 가치있는 보석들을 선물로 주었다. 

이 보석들은 그녀의 취향으로 철저하게 멋있게 디자인을 다시 하였다. 샤넬은 특히 반지를 좋아했다. 

두툼한 황금 틀속에 다양한 색상과 바게트 컷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가 대종을 이룬다.

특히 자수정과 아쿠아마린, 페리돗이 박힌 ‘코코’ 반지는 경탄을 자아내게하는 디자인으로 손꼽힌다. 

샤넬은 모든 아름다움의 요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샤넬은 보다 패션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추구했다. 

따라서 샤넬의 작품은 다이아몬드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에서부터 여러 유색석 그리고 다소 냉정한 감을 주기만 하지만 

꿈을 주는 듯한 진주의 내재적 가치를 살리는 것까지 실로 다양하다. 

샤넬은 1930년대 양식진주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유럽에 유행시켰다. 

양식진주는 천연진주 보다 값이 싸 애용되기 시작했다.

샤넬은 양식진주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작품을 계속 제작하였다. 

이러한 것을 상류층 여성들이 양식진주로 된 팔찌와 목걸이 반지등을 착용하면서 부터 

양식진주에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양식진주는 보석산업의 중요한 한 축이 되기에 이르렀다. 

샤넬은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영감에 철저히 충실했다. 

그 영감은 12궁 중 그녀의 궁인 사자궁과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능과 네잎 클로버, 요염한 동백나무 꽃잎에서 얻어졌다.

샤넬의 상점은 이 주제들로 상품을 새롭게 하였는데 검정 오닉스와 우유빛 오팔 등으로 클로버 귀걸이는 

페리돗과 자수정으로 모양을 내어 금제품으로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로 쓰여졌다. 

이러한 샤넬의 상상력은 진주와 유색보석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샤넬 조아일레리의 ‘메종메르’는 파리의 명소인 벵돔가 18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전세계 16개 상점이 있고 가브리엘 샤넬의 신화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 자료제공 : 귀금속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