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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 보석상] 까르띠에 (Cartier) - 프랑스 2015-02-13


[세계 유명 보석상] 까르띠에 (Cartier) - 프랑스
 

1847년 보석계에 첫발을 내디딘 루이 프랑스와는 당시 상류계층에서 크게 유행하던 에나멜과 조금(彫金)에 보석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1853년 보석 살롱을 열면서 때마침 일어난 보석 붐을 타고 

왕실의 보석상으로 상류층의 사랑을 받으면서 차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후 그의 아들 알프레드는 보석업계에 있어 혁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자식들에게 정통예술을 공부시켰다. 

1889년 알프레드는 장남 루이와 함께 "e;A·까르띠에와 그 아들"e;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점포도 라 페가 13번지로 옮겼다. 

까르띠에는 1902년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쓸 27개의 왕관을 제작해 더욱 유명해졌다. 

알프레드의 세 아들 중에서도 세공술에 가장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이는 루이였다.

그는 보석 세공에 백금을 사용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1904년에는 브라질의 비행사 듀몽에게 만들어 준 시계가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1923년에는 장느 토우상 부인의 도움으로 에나멜, 법랑, 은을 사용한 보석품과 가죽 일기장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까르띠에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원한 명기(名器), 쓰리 컬러 골드(Tiree color gold)가 루이에 의해 탄생되었다. 

루이가 세상을 뜨면서 까르띠에는 한때 활기를 잃기도 했지만 로베르 옷크 사장이 취임, 

1972년 까르띠에를 감각과 기술을 결집시킨 레마스토 두 까르띠에를 내놓음으로써 일찍이 누렸던 영광을 되찾았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까르띠에의 제품은 보석류, 라이터, 가죽제품, 시계, 필기구, 식기류 등에까지 이르고 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유행을 창조한다는 자세를 가진 까르띠에는 세련된 미와 꿈을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제공해 줄 것이다. 

* 발췌 : 코리안주얼리